2009년 10월 05일
아버지의 자존심
삶과 삶의 방식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엄마와 아빠가 '견진성사'를 받는다고 한다. 세례가 '입문'과 같은 것이라면 '견진'은 성인식과 같은 것이라 한다. 추석에 집에 내려갔더니 잘 아는 집 딸 결혼식과 '견진성사' 날이 겹쳤다며 '서로 네가 결혼식에 가라. 내가 견진성사를 받겠다'고 미루시며 아웅다웅. 주교님이 직접 집전을 해주신다며 꼭 받아야 한다고 하신다.
여간해서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부모님이 이렇게 신앙이 깊으셨나 놀랍기도 하고 또 생각해보면 내가 고 1때 엄마가, 고 3때 아빠가 세례명을 받으셨으니 별써 그 기간이 10년이 넘어간다. 내가 무심했구나 싶기도 하고.
엄마야 천주교 신자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세 남매를 키우느라 엄마는 교리공부를 다닐 마음의 여유도, 물리적인 시간도 없었다. 그는 큰 딸을 고등학교에 보내자 시간을 쪼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는 엄마를 그러려니 무관심 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지금의 내가 그렇듯 마음의 평안을 갈구하는 한가지 방법을 애써 찾은 것이겠거니 싶어 그때의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다.
아버지는, 지금의 그를 어떻게 말해야할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가, 아버지는 '아빠는 무엇을 믿어요?'라는 딸의 질문에 -아마 숙제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음…아빠는 아빠를 믿는다'라고 했다. 그때 아빠 나이 마흔을 갓 넘길 때였을까.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웃으며 '나는 나를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그는 빛나는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린 마음에도 아빠의 웃음에 '무신론'에 대한 호감을 키웠다.
그때 아빠는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던 사람이었다. 특유의 독한 성실함으로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셨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장'들에 대한 혐오를 거리낌없이 내보이곤 했다. 그러다 수많은 가정이 변화를 겪었을 1998년 즈음 아빠 역시 크게 흔들렸다.
막상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해고 통지가 목전까지 날아들었고 -그것은 지금도 '나는 회사에서 흠잡을 데 없이 해왔다'고 자신하시는 그의 노력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미리 받은 퇴직금으로 투자한 주식이 모두 폭락했다. 군 제대 이후 쉴새없이 모셔온 할머니가 치매와 당뇨 속에 애를 태우다 돌아가셨고 엄마는 세번째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의 손 밖에 있는 사건들이 그를 크게 흔들었다. '노력'으로'만' 모든 것을 일궈온 그에게 잔인한 형벌과도 같은 일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아빠가 해고될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아빠의 굽은 어깨를, 그전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보지 못했던 그의 등을 충격적인 기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후에 '요셉'이 된 아빠는 '아빠는 자기를 믿는다고 해놓구서'라는 딸의 장난에 "무엇인가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이 참 좋더구나"라고 했다.
냉정히 말하면 신은 그를 돕지 않았고 그에게 '실재함'을 증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나를 믿는다'던 그의 자신감은 줄었을지언정 '불행'에 대처하는 그의 힘은 커졌다. 지난 겨울 고3 막내동생 한쪽 눈이 거의 실명이 된 것으로 나타났을 때, 온 식구 가운데 의연했던 것은 아빠 뿐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현실을 파악했고, 우리 가족 모두가 잘 대응해서,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했다고 모두를 격려했다. 딸로서 주제 넘는 말이지만, 외환위기 때의 그를 새삼 돌이켜보면 지금 당신은 또다시 한단계 더 품이 넓은 사람이 된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이번 추석 집 분위기는 생각과는 영 딴판이었다. 큰 딸은 시집가야하고, 둘째 딸은 취직하고, 막내 아들은 대학을 가야하는, 이른바 '빅 쓰리 이어'라 세 남매 모두 바싹 긴장해 있었지만 아빠는 '질문' 대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늘 애가 달아있던 엄마도 한결 부드럽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쩌면 원래 우리 집은 이랬는데 나만의 삐뚤어진 시각 속에 속앓이를 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문득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강고하게 가지고 있는 '예수님을 믿는 종교들'에 대한 반감. 물론 내가 믿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지만, '부정'은 '몰이해'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별로야'라고 이해를 거부해 왔을지. 물론 장점이 있을지라도 싫은 것은 싫은 거지만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워지는 것들이 있다.
덧, 취직하고 나서 제대로 옷 한벌 해드린 적 없고 특히 올해 생신부터 어버이날까지 제대로 챙긴것도 없고 해서 가을 양복 사입으시라고 용돈 50만 원을 드렸다. 엄마한테는 그리 갖고 싶어하시는 명품백을 사드리려 카드에 200만원을 채워넣고 내려갔는데, 시간을 못내 다음을 기약하고 아버지께 용돈만 드렸다.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영 딴판. 얼굴이 확 굳으셔서 식구들이 급당황.
이후 엄마의 해석으로는 "당신은 아직 자식한테 용돈 받을 나이도, 처지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신데 돈도 별로 없는 네가 돈을 드리니까 당황하신 것"이라고 한다. 역시 '현물'로 갔어야 했다. ㅠ. 한편으론 아빠의 여전한 자존심을 확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ㅋ
# by | 2009/10/05 18:37 | Live or eviL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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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는 도쿄여행갔을 때-그랬거든.
내가 나를 정의하는게, 편견이 되어서 나를 옭아맬 수 있겠구나.
열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라고.
물론. 방법은 모르겠지만. ^^
나랑 언제 만나주실건가요?